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클라라 페타치 (문단 편집) == 최후 == 무솔리니의 몰락이 임박해지자 무솔리니를 따라 국외 탈출을 꾀했다. 그러나 도망가던 그들은 변장을 알아챈 이탈리아 좌익 [[게릴라]][* [[빨치산]]/이탈리아어로는 파르티지아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베니토 무솔리니 일행은 독일군으로 위장했지만, 공교롭게도 빨치산 그룹 중에 예전에 해군 [[수병]] 시절 베니토 무솔리니한테 수훈한 사람이 있어서 들통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혹은 빨치산이 베니토 무솔리니의 정부 클라라 페타치를 알아보고 베니토 무솔리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거나, 베니토 무솔리니가 신던 값비싼 장화 때문에 위장이 들통났다는 다른 이야기도 있다. [[파일:Mussolini_e_Petacci_a_Piazzale_Loreto,_1945.jpg|width=75%]] 베니토 무솔리니가 [[1945년]] [[4월 28일]] [[게릴라]]에게 사로잡히자 클라라 페타치도 마르첼로를 포함한 다른 측근들과 함께 잡혀서 즉시 총살당해 죽었다. 총살 집행하기 전엔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집행용으로 쓸 총들이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제조된 총기들이라서 총알이 나오지 않거나, 계속된 작동불량, 너무 약한 화력 때문에 총알들을 맞고도 거의 대부분 잘 죽지를 않아서 다들 엄청나게 고통스러워 했고, 비명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성능 좋은 [[베레타 M1934]] 자동권총 2정과 [[베레타 M1938]] 기관단총 1정으로 겨우겨우 총살 집행이 끝났다. 총살당한 후 클라라 페타치의 시체는 애인이었던 베니토 무솔리니와 그의 측근들의 시체 3구[* 니콜라 봄파치, 알레산드로 파볼리니, 아실레 스타라체]와 함께 [[밀라노]]로 인도된 뒤 시신이 부패할 때까지 피아잘레 로레토 광장에 있는 어떤 [[주유소]] 기둥에 거꾸로 매달려있었다. 이후 마르첼로를 포함한 다른 10명의 시신도 함께 공개됐다고 한다. 그들의 시체에는 원한을 품던 시민의 침과 욕설 세례가 이어졌으며, 심지어 어떤 시민들은 [[몽둥이]]로 아주 신나게 두들겨 패거나 [[권총]]으로 쏘기도 했다. 그녀의 시신은 사람들이 생식기에다 이물질을 넣거나 막대기를 쑤셔댔다. 원래 클라라 페타치의 치마는 뒤집혀서 하반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는데, 그 참상을 보다 못한 어느 노파가 치마를 여며서 가랑이 사이로 끼워넣어 줬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에선 "클라라의 치마를 여며주다."는 말이 "자신의 소신을 위해 과감하게 행동하다."라는 관용어로 있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아돌프 히틀러도 큰 충격에 빠졌다. 베니토 무솔리니가 총살당하고 이틀 후에 히틀러는 자살할 때 내 시체를 불태워 달라는 [[유서]]를 남겼는데, 자신도 베니토 무솔리니처럼 죽어서 시체가 저런 꼴을 당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각주] [[분류:이탈리아의 인물]][[분류:1912년 출생]][[분류:1945년 사망]][[분류:베니토 무솔리니]][[분류:총기에 죽은 인물]][[분류:로마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